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
지난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는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3.50%에서 3.25%로 인하하였다[1].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21년 8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인하로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한 것이다. 이같은 통화정책의 기조 전환(인상기 → 인하기)은 2000년 이후 총 다섯 차례가 있었는데, 긴축기조 지속기간(3년 2개월)이 이번이 가장 길었다. 이는 물가 급등, 환율불안, 가계부채 우려 등으로 인해 높은 기준금리의 유지 필요성이 컸다는 의미인 동시에, 정책기조 전환도 그만큼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금번 금리인하의 배경을 상세히 살펴보고 향후 통화정책 운용방향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한다.
물가상승률이 뚜렷히 안정된 가운데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증대
우선 물가 측면을 보면, 그간의 통화긴축 기조 등에 힘입어 물가상승률의 안정세가 뚜렷해졌다. 2022년 6%대까지 높아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 목표수준인 2% 내외로 낮아졌으며, 근원물가 상승률도 9월 들어 2.0%로 둔화되었다. 중동지역 리스크가 불확실성 요인으로 상존하고 있지만 낮은 수요압력 지속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물가상승률은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안정세는 팬데믹 이후 주요국의 인플레이션 추이와 비교해 보더라도 두드러진다.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은 정점(peak)이 미국, 유로지역 등에 비해 낮았고 이후의 디스인플레이션도 빠르게 진전되었으며, 이에 따라 목표수렴도 주요국보다 빠른 편이다. 특히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 상승률의 경우 우리나라는 2.0%에 도달한 반면 미국, 유로 지역 등은 아직 3% 내외의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리 인상폭이 주요국보다 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물가목표 수렴이 빨랐던 것은 주요국보다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여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가져갈 수 있었고,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 지속 등 거시정책 공조도 원활했던 데 기인[2]한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 측면에서는 완만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향후 전망의 불확실성은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내수의 경우 소비가 점차 개선되겠지만 건설투자가 비수도권의 부동산경기 부진 지속 등으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출은 IT경기 호조에 힘입어 증가세를 이어갔으며 향후 주요국 경기 및 IT수출 흐름 등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는 이전보다 완화
가계부채, 환율 등에 대한 경계감이 여전히 높기는 하지만 정부의 거시건전성정책 강화, 미 연준의 피벗 등으로 관련 리스크가 다소 완화되었다. 가계부채의 경우 지난 8월만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연율 20%를 상회하는 급등세를 보이고 금융권 가계대출도 10조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금융불균형 누증에 대한 우려가 컸었다. 하지만 9월 이후 스트레스DSR 도입 등 거시건전성정책 강화로 주택가격 오름세가 낮아지고 가계대출 증가규모도 5조원 내외로 축소되는 등 주택시장 및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향후 가계대출 증가규모는 월별 변동성은 있겠지만 주택거래 감소 등을 감안하면 당분간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미 연준이 정책금리 인하를 시작하고 앞으로도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함에 따라 외환부문의 부담이 다소 완화되었고 국내 여건에 집중하여 통화정책을 운용할 여지가 좀 더 커졌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낮아진 가운데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도 완화되기 시작한 만큼 통화긴축 정도를 소폭 완화하고 그 영향을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한 것이다.
앞으로의 금리인하 속도는 정책변수 간 상충관계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고 균형있게 결정
향후 통화정책 운용방향과 관련해서는 물가상승률이 2% 내외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기준금리를 중립적인 방향으로 점차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도는 정책변수 간 상충(trade-off), 팬데믹 이후 정책 여건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 등을 점검하면서 신중하고 균형있게 결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책변수 간 상충 정도를 나타내는 ‘Bullseye Chart[3]’를 통해 금번 및 과거 네 차례 인하기를 비교해보면, 물가갭·GDP갭 조합은 금번 인하기에 3 사분면에 위치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물가·성장 간 상충 우려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GDP갭·가계부채 증가규모 조합은 과거 인하 시작 시기는 대체로 3 사분면에 위치한 반면, 금번은 2 사분면에 위치하고 있어 성장·금융안정 간 상충 우려가 과거보다 큰 상황이며, 지난주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 등과 관련한 리스크에도 여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인플레이션 동학,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파급영향, 중립금리 수준 등의 정책 여건이 구조적으로 변화하였을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은 무역규제 강화 등에 따른 글로벌 분절화, 이상 기후의 물가 영향력 확대, 지정학적 리스크 지속 등과 같은 공급측 요인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고, 팬데믹 이후 저금리 상황하에서의 자산가격 급등 경험 등으로 인해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의 금리 민감도가 높아져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둔화 추세, 높아진 가계부채 수준, 미국의 장기금리 상승 등으로 국내 중립금리 추정의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이러한 정책 여건의 변화로 인해 통화정책의 파급효과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점검해 나가야한다.
이처럼 성장과 금융안정 간 상충관계가 과거 기조 전환기보다 큰 상황이고 정책 여건의 구조적 변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의 인하 속도 등도 과거보다 신중하고 균형있게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1] 이 결정에 대해 장용성 위원은 기준금리를 3.5%에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나타내었다.
[2]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과 달리 팬데믹 기간 중 여성·고령층을 중심으로 노동공급이 확대되었는데 이러한 양호한 노동공급 여건도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3] 정책변수 조합이 2·4 사분면에 위치하고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상충이 큰 상황으로, 1·3 사분면에 위치하고 원점에서 멀어질수록 금리조정 필요성이 커지고 결정이 용이(less conflicting)한 상황으로 각각 평가할 수 있다.(‘The Bullseye Chart’, Chicago Fed, 2020.8월)
보도자료
통화정책방향(20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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